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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Dec, 2025
부모님한테 '회사 어때' 물어볼 때의 거짓말
부모님한테 '회사 어때' 물어볼 때의 거짓말 한 달에 한 번 오는 전화 일요일 저녁 8시. 부모님한테 전화가 온다. 정확히 한 달에 한 번. 어머니는 매달 첫째 주 일요일 저녁에 전화하신다. 캘린더에도 없는데 정확하다. "여보세요, 아들." "네, 엄마." "밥은 먹었어? 회사는 어때?" 이 질문이 온다. 매달 똑같은 질문.나는 매달 똑같이 대답한다. "네, 잘 먹고 있어요. 회사도 괜찮아요." 거짓말이다. 전부 거짓말. 사실은 괜찮지 않다 어제 새벽 3시에 깼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일 PR 올려야 하는데 코드가 안 돌아간다. 테스트 케이스 3개가 빨간색이다. 고치는 법을 모른다.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봤다. 에어컨 소리만 들렸다. 4시까지 잠이 안 왔다. 핸드폰으로 스택오버플로우 봤다. 영어라 이해 안 됐다. 5시에 겨우 잠들었다. 8시 알람에 일어났다. 출근했다. 회사 가서 선배한테 물어봤다. "저... 이 테스트 케이스가 계속 실패하는데..." 선배가 내 화면 봤다. "아 이거? mock 데이터 형식이 틀렸네. 여기 타입 정의 다시 봐." 10초 만에 해결됐다. 나는 이것 때문에 밤새 고민했다.'괜찮아'라는 말의 무게 부모님은 대전에 산다. 나는 서울에 산다. KTX로 1시간 30분. 가까운데 멀다. 부모님은 내가 서울에서 개발자로 취업한 게 자랑스럽다고 하셨다. "우리 아들 서울서 IT 회사 다녀." 친척들한테 말씀하신다고 들었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배가 아프다. IT 회사 맞다. 개발자 맞다. 근데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입사 8개월 됐다. 아직도 React 헷갈린다. TypeScript는 더 헷갈린다. 선배들 회의 들으면 외계어다. "이거 Redis로 캐싱하고, pub/sub 패턴으로 가면 되지 않을까요?" "좋네요. 그럼 Docker Compose에 Redis 컨테이너 추가하고..." 무슨 말인지 모른다. 고개만 끄덕인다. 근데 부모님한테는 말 못 한다. "회사 어때?" "네, 괜찮아요." 이 거짓말의 무게가 55kg이다. 내 몸무게만큼 무겁다. 전화할 때 보이는 것들 전화할 때 내 방을 본다. 빨래 3일치가 의자에 쌓여 있다. 컵라면 용기 2개가 책상에 있다. 어제 먹은 거다. 모니터에는 인프런 강의가 켜져 있다. "React 완벽 가이드". 진도는 15%. 노션에는 "오늘 배운 것" 페이지가 열려 있다. 마지막 작성일: 2주 전. 바닥에는 택배 상자. 알고리즘 책이다. 아직 안 뜯었다. 이게 내 일상이다. 부모님은 이걸 모른다."방은 깨끗하게 쓰고 있지?" "네, 깨끗해요." 거짓말. "밥은 잘 챙겨 먹고?" "네, 잘 먹어요." 거짓말. 오늘 점심은 편의점 삼각김밥 2개였다. "친구들은 자주 만나?" "네, 가끔 만나요." 반은 진짜. 한 달에 한 번 부트캠프 동기들이랑 만난다. 다들 힘들다고 한다. 말하고 싶은데 못 하는 것들 선배가 코드리뷰 남긴다. "이 부분 렌더링 최적화가 필요합니다. useMemo 사용해보세요." useMemo가 뭔지 모른다. 구글링한다. 글 10개 읽는다. 여전히 모르겠다. 유튜브 본다. "useMemo 쉽게 이해하기". 20분짜리 영상. "쉽게"라는데 어렵다. 결국 ChatGPT한테 물어본다. "useMemo 예제 코드 보여줘." 코드 받는다. 복붙한다. 돌아간다. 뭔지는 모르겠는데 돌아간다. PR 다시 올린다. "수정했습니다." 선배가 approve 누른다. 나는 여전히 useMemo를 모른다. 이런 이야기를 부모님한테 할 수 없다. "엄마, 나 회사에서 매일 모르는 거 투성이야. 선배들 말 하나도 이해 못 해. 코드 복붙해서 넘어가. 3개월 뒤 수습 평가 떨어질까 봐 무서워." 이렇게 말하면 어머니는 걱정하신다. "그럼 그만둘래? 집으로 올래?" 그건 더 싫다. 그래서 거짓말한다. "회사 괜찮아요. 잘 하고 있어요." 거짓말하는 이유 부모님은 내가 부트캠프 다닐 때 600만원 보내주셨다. "공부 열심히 해. 좋은 회사 들어가." 나는 6개월 동안 공부했다. 매일 12시간씩. 취업했다. 중소기업. 연봉 3400만원. 적지만 취업이 어디냐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좋아하셨다. "우리 아들 대단하다. 개발자 됐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부모님을 속였다. "네, 회사 좋아요." 사실은 첫 출근 날부터 겁났다. 선배가 "Git 쓸 줄 알지?" 물었다. "네." 대답했다. 사실 Git Bash랑 GitHub Desktop 차이도 몰랐다. "그럼 이 브랜치에서 작업해." 브랜치가 뭔지 몰라서 유튜브 봤다. 화장실에서. 이런 걸 부모님한테 말하면 실망하실 것 같다. 600만원이 아깝다고 생각하실 것 같다. 그래서 계속 괜찮다고 말한다. 전화 끊고 나면 통화는 10분 정도 한다. "그래, 건강 챙기고. 너무 무리하지 말고." "네, 엄마도요." "응. 끊는다." "네." 전화 끊는다. 방은 조용해진다. 노트북만 웅웅거린다. 팬 소리. 나는 침대에 눕는다. 천장을 본다. '괜찮아'라고 말했다. 거짓말이다. 내일 회의가 있다. 진행상황 공유. 준비 안 됐다. 모레 코드리뷰. 떨린다. 다음 주 배포. 내가 짠 코드가 에러 안 나면 좋겠다. 다다음 주 월급날. 월세 나가면 120만원 남는다. 교통비 빼면 100만원. 식비 빼면 70만원. 저축? 못 한다. 부모님은 이걸 모른다. 나는 잘하고 있다고 말했으니까. 언젠가는 말할 수 있을까 부트캠프 동기 중에 한 명이 퇴사했다. "못 버티겠더라. 매일 혼나고, 매일 모르겠고." 우리는 그 친구를 위로했다. "괜찮아. 다른 회사 찾으면 돼." 근데 속으로는 생각했다. '나도 곧 저럴 것 같은데.' 아직 8개월. 아직 신입. 아직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근데 매일 불안하다. 언제쯤 '괜찮아'가 진짜가 될까. 언제쯤 부모님한테 거짓말 안 해도 될까. 언제쯤 코드리뷰 받을 때 손 안 떨릴까. 언제쯤 회의에서 한마디라도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버틴다 내일도 출근한다. 9시 10분에 도착한다. 10분 늦는 게 습관이다. 슬랙 확인한다. 멘션 3개. 심장 뛴다. 모니터 켠다. VS Code 켠다. 어제 못 끝낸 작업 이어한다. 모르는 거 나오면 구글링한다. 유튜브 본다. ChatGPT한테 물어본다. 점심은 편의점. 삼각김밥. 오후에 회의. 고개 끄덕인다. 퇴근은 7시. 야근 아니래. 집 와서 강의 본다. 10분 듣고 잔다. 이게 내 일상이다. 힘들다. 근데 버틴다. 다음 달 첫째 주 일요일에 또 전화 올 거다. "회사 어때?" 나는 또 대답할 거다. "괜찮아요." 거짓말. 근데 언젠가는 진짜가 될 거다.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버틴다.오늘도 거짓말했다. 미안해,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