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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 12 Dec, 2025
동기들과의 퇴근 후 맥주: '너네 회사 어때'
동기들과의 퇴근 후 맥주: '너네 회사 어때' 목요일 저녁 8시 회사 앞 이자카야. 동기 셋이 왔다. 나까지 넷. "야 오랜만이다." 사실 한 달 전에 봤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맥주 4잔 시켰다. 생맥주 4천원. 회사 근처라 비싸다.첫 잔 받자마자 준호가 말했다. "아 진짜 오늘 개빡쳤다." 시작됐다. 다들 힘들대 준호는 스타트업 다닌다. 프론트엔드 혼자래. 디자이너도 없대. "피그마 파일 받았는데 그냥 와이어프레임이야. 이게 디자인이냐고." "그래서?" "내가 색 다 정하고 버튼 다 만들었지." "...그럼 디자이너 너네?" "응. 나." 민수는 대기업 계열사 들어갔다. 부럽다고 했었다. 지금은 아니다. "우리 회사 jQuery 쓴다." "뭐?" "jQuery." "2024년에?" "레거시래. 건드리면 안 된대." 나는 웃었다. 민수는 안 웃었다.재희는 SI 갔다. 3개월에 한 번씩 프로젝트 바뀐대. 지금은 관공서 시스템 만든대. "어제 고객사 가서 IE 11 테스트했다." "IE?" "응. 아직도 쓴대." "미쳤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치킨 나왔다. 다들 먹었다. 5분 동안 아무도 말 안 했다. 그냥 먹었다. '너네 회사 어때' 준호가 물었다. "너는 어때." 나? 나도 힘들지. "선배가 코드리뷰 10개 달았어." "오 꼼꼼하네." "근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 "일단 수정했어. 뭘 수정한 건지도 모르고." 민수가 웃었다. "나도 그래." 재희가 고개 끄덕였다. "나도." 준호도 웃었다. "나도 사실 그래." 갑자기 분위기가 풀렸다. "아 진짜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준호가 말했다. "CI/CD 구축하래. 뭔지도 모르는데." "나는 Redis 캐싱하래." 민수가 말했다. "그게 뭔데." "나는 SQL 최적화하래." 재희가 말했다. "인덱스가 뭔지도 모르는데." 나는 웃었다. "나는 useCallback 언제 쓰는지도 모르겠어." 다들 웃었다.위로가 되는 이유 사실 해결책은 없다. 우리 중 누구도 답을 모른다. 그냥 다들 힘들다는 걸 확인했다. 그게 다다. 근데 이게 위로가 된다. 나만 못하는 게 아니구나. 다들 모르면서 일하는구나. 선배들도 처음엔 이랬겠지. 그런 생각. "근데 재밌을 때도 있지 않아?" 민수가 물었다. 준호가 대답했다. "있지. 코드 돌아갈 때." "나는 배포 성공했을 때." 재희가 말했다. 나는? "에러 원인 찾았을 때?" 다들 고개 끄덕였다. 그 순간은 진짜 좋다. 3시간 동안 삽질하다가 원인 찾으면. 콘솔에 에러 안 뜰 때. 새로고침했는데 정상 작동할 때. 그때는 진짜. 개발자 한 보람 있다. 근데 그게 하루에 한 번 있을까 말까다. 단톡방은 활발하다 우리 넷 말고도 동기들 더 있다. 단톡방 인원 12명. 거기는 항상 누군가 하소연한다. "오늘 배포 롤백했다 ㅠ" "회의 3시간 했는데 결론 없음" "내일 발표인데 PPT 10장 남음" "아직도 회사임 ㅋㅋ" 그럼 누군가 답한다. "ㅋㅋㅋㅋ" "힘내" "나도" "우리 다 똑같네" 별거 아닌 대화다. 근데 이게 힘이 된다. 혼자 아닌 것 같아서. 회사에서는 혼자다. 선배들은 바쁘다. 동기는 없다. 물어볼 사람도 없다. 그냥 구글링하고. GPT한테 물어보고. 유튜브 보고. 혼자 해결한다. 근데 이 단톡방에서는. 다들 나랑 똑같이 허우적거린다는 걸 안다. 그게 위로다. 10시 반 맥주 3잔 더 마셨다. 치킨 다 먹었다. 계산은 각자 냈다. 1인당 2만원. "다음엔 언제 보지." "한 달 후?" "그때쯤 되면 또 한 명쯤 이직하겠네." 웃으면서 헤어졌다. 집 가는 지하철. 핸드폰 봤다. 단톡방에 준호가 썼다. "오늘 고마웠어 ㅋㅋ" 재희가 답했다. "나도" 민수가 답했다. "다들 힘내자" 나도 썼다. "ㅇㅇ 힘내"해결책은 없었다. 그냥 다들 힘들다는 걸 확인했다. 근데 그게 유일한 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