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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슬랙을 두려워하는 이유

매일 아침 슬랙을 두려워하는 이유

매일 아침 슬랙을 두려워하는 이유 9시 10분, 의자에 앉기 전에 해야 할 일 출근한다. 키를 꺼낸다. 신발을 벗는다. 그리고 바로 핸드폰을 꺼낸다. 슬랙을 켠다. 왜 이렇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자동으로 손가락이 움직인다. 마치 누군가 내 팔목을 조종하는 것처럼. 신발장에서 의자로 가는 5초 사이에 이미 확인해야 할 알림이 있는지 없는지가 결정되어 있다는 건 좀 이상하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슬랙을 확인하지 않으면 뭔가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안 읽은 메시지 12개' 심장이 철렁한다. 12개면 많은 건가. 적은 건가. 이게 정상인가. 다들 이렇게 받나. 몰라. 일단 의자에 앉자. 커피는 그 다음에.안 읽은 메시지의 심리학 안 읽은 메시지 개수가 눈에 띄는 순간. 뇌가 자동으로 시뮬레이션을 시작한다. '뭐가 잘못됐나.' '어제 올린 PR에 뭔가 이슈 생겼나.' '선배한테 처리하라고 했던 거 까먹었나.' 손가락이 떨린다. 진짜로. 노을색 아이콘이 떠 있는 슬랙 메시지들. 그걸 클릭하기 전까지는 상황이 정확하지 않다. 상황이 정확하지 않으면 대응할 수도 없다. 그래서 클릭하지 않은 채로 한참 동안 보고만 있다. '읽으면 끝나는데.' 맞다. 읽으면 끝난다. 그런데 읽기 싫다. 어제 날씨 얘기하는 메시지 한두 개는 괜찮다. 근데 그 사이에 '이신입, 요청 사항이 있어서' 이런 게 섞여 있으면? 죽는다. 슬랙에서 직급이 높은 사람의 이름이 떠 있으면 일단 불안하다. 그게 컨텍스트 없이 밤샘 중에 온 메시지라면 더욱 그렇다. 야간 메시지는 높은 확률로 급할 일이다. 야간 메시지가 지금 아침에 안 읽은 채로 남아 있다는 건 내가 이미 뭔가 늦었다는 뜻이다. '아... 네네. 죄송합니다. 지금 확인하겠습니다.' 이 문장을 몇 번이나 날렸는지 모른다. 안 읽은 메시지가 정말 무서운 건, 그게 뭘 요구하고 있는지 모른 채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는 거다. 마치 미션을 받기 직전인 것처럼. 또는 이미 미션을 받았는데 내가 못 들었던 것처럼. 어제 선배가 '이거 좀 부탁해'라고 메시지 남겼다면? 내가 이미 안 본 지 10시간이 지났으면? 선배는 지금 내가 한 줄 읽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을까. 아니다. 선배는 이미 나를 잊었다. 그리고 1시간 뒤에 '왜 아직 안 했어?' 이러면 난 뭐라고 변명할 건가. '아... 죄송해요. 지금 봤어요.' 항상 이 문장이 나온다.12개의 메시지, 12개의 시나리오 슬랙을 켰을 때 첫 번째로 하는 일. 메시지를 분류한다. 머릿속으로.팀 공지 채널 → 읽어야 하는 건가. 다들 읽나. 바로 내 이름이 멘션된 거 → 죽는다. 스레드 안 메시지 → 아, 내가 답할 차례인가. 선배 개인 메시지 → 가장 무서운 거. 팀 전체 메시지 → 어 뭐라고? 자동화 알림 (예: 배포 성공) → 이건 안심이다.1~5번 중에서 1개라도 있으면 출근 기분이 싹 날아간다. '오늘도 바쁘겠네.' 대체로 그렇다. 안 읽은 메시지가 5개 이상이면 확정. 오늘은 뭔가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게 뭔진 아직 모르지만 분위기상 그렇다. 가장 무서운 건 메시지 제목이 모호할 때다. '한번 봐줄 수 있어?' 이거면 뭘 봐야 하는 거야. PR? 코드? 로직? 디자인? 결과물? 아니면 지금 화면을 공유한 채로 있는 건가. 슬랙에는 창사 이래로 가장 모호한 질문들이 쌓여 있다. '우리 이거 어떻게 할까?' 누가 "우리"야. 내가 한 건가. 선배가 한 건가. 다 함께? 'PR 올려줄래?' 언제까지. 오늘. 내일. 지금. 답변 없이 마침표로 끝나는 메시지는 정말 악질이다. 그건 거의 명령이다. 질문처럼 보이는 명령. 구두점 없는 메시지도 불안하다. 뭔가 급한 느낌이 난다. '이거 빨리' 빨리가 얼마나 빨리인지는 명시 안 하고. 나는 매일 이런 메시지들을 해석하는 데 10분을 쓴다. 그리고 그 해석이 틀렸을 확률은 60%다. 선배에게 물어보면 된다. '선배, 이거 뭐 하라는 거예요?' 근데 이미 바쁜데 이렇게 물으면 선배도 스트레스 받을까봐 묻지 못한다. 그래서 혼자 추리한다. '아마도 이런 뜻인 것 같은데... 내 생각이 맞으면 좋겠어.' 틀렸다. 항상 틀렸다. 그리고 다시 물어본다. 그리고 'PR 다시 올려줄래?'라는 메시지가 온다.읽기 전에 이미 피곤함 슬랙을 켜는 순간 하루가 시작된다. 정확히는 하루가 결정된다. '안 읽은 메시지 0개' 이러면 뭔가 이상하다. 뭔가 빠진 게 있나. 다들 내 얘기를 안 했나. 자유로운 아침이 오면 그게 더 불안하다. 조용함이 불안하다. '안 읽은 메시지 3개' 보통. 이 정도면 조기 중퇴까지는 아니다. 점심까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안 읽은 메시지 8개 이상' 오늘은 지옥이다. 실제로 읽어보니 그 중 5개가 일반 공지고 2개가 옛날 메시지 캐시였던 일도 있다. 하지만 그건 읽기 전엔 모른다. 읽기 전엔 모두 폭탄처럼 보인다. 심장이 미리 뛴다. 커피를 마셔도 소용없다. 이미 카페인은 필요 없다. 불안감만으로 충분히 깨어 있다. 손이 떨린다. 자판을 잘못 친다. 코드를 쳐야 하는데 자꾸 슬랙 창으로 넘어간다. '또 뭐 왔나.' 또 왔다. 또 온다. 매 시간마다. 가장 많이 오는 건 오전 10시와 오후 2시다. 그 두 시간이 지나면 안심한다. '오늘은 별로 없겠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3시쯤 되면 다시 온다. 퇴근 30분 전 쯤에 가장 무서운 메시지가 온다. '내일 아침까지 이거 한번 봐줄 수 있어?' 내일 아침. 즉, 오늘 밤 내 시간이라는 뜻이다. 퇴근 후 1시간은 자유 시간이지만 사실상 그 시간도 빼앗긴다. 왜냐면 메시지가 와도 답장을 하지 않으면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편하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은 절대 내일 아침이 아니다. 그건 '오늘 밤'이다. 아무도 이 암호를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나는 알고 있다. 부트캠프에서 배운 것도 아니고. 그냥 실전에서 습득했다. 신입들의 강제 학습 과정. 선배는 몰라도 되는 것들 선배한테 물어봤다. '선배는 아침마다 슬랙 안 읽은 거 보고 불안하지 않아요?' 선배가 웃었다. '신입이니까 그래. 나도 처음엔 그랬어.' 그게 위로인지 협박인지 모르겠다. '이거 저한테 온 거 맞죠?' '응. 너한테.' 그럼 왜 9시간이 지나도록 답장이 없으면서... 아. 나는 그런 부분은 신경 쓰지 않는 거구나. 신입이 아니니까. 선배는 슬랙을 켜긴 하는데 보는 게 아니라 흘려본다. 쭉 지나간다. 마치 뉴스를 보는 것처럼. 그리고 중요한 거만 나중에 처리한다. 근데 내건 전부 중요한 것 같다. 왜냐면 뭐가 중요한지 내가 아직 모르니까. 동기 재준이는 어제 메시지에 답장을 2시간 뒤에 했다. '나 그냥 1시간에 한 번 체크해.' 1시간에 한 번. 신세한 거다. 재준이도 불안한 건 같은데 걔는 좀 더 여유 있어 보인다. 왜 난 안 된다고 생각할까. 아마도 내가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 것 같다. 모르는 게 많아서. 언제라도 혼날 준비가 되어 있어서. 선배는 충분히 알아. 그래서 메시지를 들을 필요가 없다. 근데 나는 부족해. 그래서 매 메시지가 시험처럼 느껴진다. '이거 할 수 있어?' 이 질문도 사실 '할 수 있어?'가 아니라 '바로 해야 해?'라는 뜻일 거다. 근데 '네' 하고 못 하면? 미친다. 마지막으로 남겨진 것들 지금 시간 9시 14분. 내가 슬랙을 켠 지 14분. 여전히 12개가 남아 있다. 이제 읽어야 한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걸 읽고 나면 내 아침은 끝난다. 아침이 끝나고 나머지 하루가 결정된다. 혹시 모르니까 화장실부터 다녀올까. 그것도 시간 낭비다. 결국엔 봐야 한다. 좋아. 켈 게. 손가락이 미끄러진다. 첫 번째 메시지. '우리 이거 어떻게 할까요?' 다른 선배다. 다른 팀이다. 관계 없는 안내다. 다음. 'ㅂ1대신 ㅂ2로 수정해줄 수 있어?' 이게 뭔데. ㅂ은 뭐고 어디서 수정하는 거야. 다음. '✓' 이건 뭐지. 승인이야. 거절이야. 내 심장은 계속 뛴다. 나머지 9개를 계속 읽는다. 대부분 별 거 아니다. 그냥 공지. 그냥 조회. 하지만 그 안에 한두 개가 나를 지목한다. 그게 오늘 하루를 결정한다. '이신입, 어제 올린 거 확인해봤어?' 피한다. '아 네. 지금 보겠습니다.' 지금 본다. 에러가 있다. 고칠 수 있나. 못 고칠 것 같은데. 선배한테 다시 물어봐야 하나. 물어본다. '그거 왜 이렇게 됐어요?' '너가 처음부터 잘못 이해했나 봐. 다시 해봐.' 다시 한다. 하루가 이렇게 간다.결국 슬랙은 내 아침을 훔쳐간다. 그리고 아침은 하루를 훔쳐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