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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간단한 건데' 라는 말이 가장 두려운 이유

'이거 간단한 건데' 라는 말이 가장 두려운 이유

'이거 간단한 건데' 라는 말이 가장 두려운 이유 그 말을 들으면 심장이 멈춘다 오전 10시. 슬랙이 울렸다. "신입님, 이거 간단한 건데 오늘까지 되겠죠?" 심장이 철렁했다. 손이 떨렸다. '간단한 건데'라는 말 뒤에는 항상 지옥이 숨어있다. 8개월 동안 배웠다. 이 문장이 나오면 무조건 어렵다는 걸.지난주였다. 팀장님이 말했다. "로그인 폼에 소셜 로그인 추가해줘. 간단한 거니까." 간단? 구글 OAuth 설정만 2시간 걸렸다. 리다이렉트 URI 오류로 3시간 더. 카카오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 네이버는 또 달랐다. 결국 3일 걸렸다. 간단하지 않았다. 선배의 '간단함'과 나의 '간단함' 선배한테는 진짜 간단한 거다. 인정한다. 하지만 나한테는 아니다. 선배는 React를 5년 썼다. 나는 8개월이다. 선배는 Redux 구조를 외우고 있다. 나는 useContext도 헷갈린다. 선배의 '간단함' = 30분 나의 '간단함' = 3일 이 차이를 모른다. 아니, 잊는다.한 달 전에 있었던 일이다. "API 연동 간단하니까 점심 전까지만." 간단할 리 없었다. CORS 에러부터 막혔다. 구글링했다. 해결책이 10가지였다. 다 해봤다. 안 됐다. 결국 선배한테 물어봤다. "아, 이거요? 프록시 설정하면 돼요. package.json에 한 줄만." 한 줄? 나한테는 그 한 줄을 찾는 데 3시간 걸렸다. '간단한 건데' 뒤에 숨은 것들 이 말 뒤에는 전제조건이 숨어있다. "(너가 기본 지식이 있다면) 간단한 건데" "(이미 해본 적 있다면) 간단한 건데" "(에러 안 나면) 간단한 건데" 나는 기본 지식이 없다. 해본 적도 없다. 에러는 항상 난다. 그러니 간단할 리 없다. 지난주 목요일. 선배가 말했다. "스타일 수정만 하면 되는데. CSS니까 간단하지." 간단하지 않았다. Flexbox 중첩 구조였다. justify-content와 align-items가 뭐가 다른지 또 헷갈렸다. 30분 만에 끝날 줄 알았다. 4시간 걸렸다. 부끄러웠다. CSS도 못 하나 싶었다.왜 '간단하다'고 말하는 걸까 악의는 없다고 본다. 선배들도 신입이었던 시절이 있다. 다만 잊었을 뿐이다. 처음 코드 짤 때의 막막함을. 에러 메시지가 무슨 뜻인지 몰랐던 순간을. 경험이 쌓이면 간단해진다. 당연하다. 하지만 경험 없는 사람한테 "간단하다"고 말하는 건 위험하다. 압박이 된다. '간단한 건데 왜 나는 못 하지?' 이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자존감이 깎인다. 작년에 부트캠프 다닐 때다. 강사님이 말했다. "이거 간단하니까 집에서 복습해보세요." 복습 못 했다. 간단하지 않았으니까. 실제로 겪은 '간단한' 작업들 케이스 1: 데이터 정렬 "배열 정렬하면 되는데. sort() 쓰면 끝이야." 끝이 아니었다. 문자열 정렬인지 숫자 정렬인지부터 헷갈렸다. 한글 정렬은 또 달랐다. localeCompare라는 메서드를 처음 알았다. 2시간 걸렸다. 케이스 2: 컴포넌트 분리 "저 버튼 컴포넌트로 빼. 재사용하게. 간단하지?" 간단하지 않았다. props 어떻게 넘기지? 이벤트는 어떻게? children은 뭐고? onClick을 직접 넘겨야 하나 콜백으로 감싸야 하나? 결국 선배 코드 복사했다. 이해는 못 했다. 케이스 3: 환경변수 설정 "env 파일 만들어서 키 넣으면 돼. 간단해." .env? .env.local? .env.development? 뭐가 다른지 몰랐다. process.env로 접근한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git에 올리면 안 된다는 것도. 30분짜리 작업이 반나절 갔다. 그래도 물어보기 어려운 이유 "이거 어떻게 하는 건가요?" 이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간단한 건데'라고 했으니까. 간단한 걸 물어보면 무능해 보일까 봐. 선배는 바쁘다. 코드리뷰하고 회의하고 자기 작업도 있다. 거기다 신입 질문까지 받으면 귀찮을 것 같다. 그래서 혼자 끙끙댄다. 3시간 걸릴 걸 10시간 걸려서 한다. 지난달이었다. useEffect 무한 루프에 빠졌다. 뭐가 문젠지 몰랐다. 의존성 배열 문제였는데. 선배한테 물어볼까 30분 고민했다. 결국 안 물어봤다. '간단한 거'라고 했으니까. 2시간 뒤에 해결했다. 스택오버플로우에서. 선배한테 물어봤으면 5분이었을 거다. '간단함'의 기준이 다르다는 걸 이해할 때 입사 6개월쯤 됐을 때였다. 후배가 들어왔다. 나보다 4개월 늦게. 내가 말했다. "이거 fetch로 데이터 가져오면 돼. 간단해." 후배가 멈칫했다. 그 표정을 봤다. 간단하지 않구나. 그제야 깨달았다. 나도 똑같이 하고 있었다. '간단하다'는 건 상대적이다. 나한테 간단한 게 남한테는 아니다. 그날 이후로 말을 바꿨다. "이거 fetch 써야 하는데, 처음이면 헷갈릴 수 있어요." 이렇게 말하니 후배가 편하게 물어봤다. 지금은 어떻게 대응하는가 '간단한 건데'라는 말을 들으면 일단 확인한다. "제가 이해한 게 맞나요? 이거 하면 되는 거죠?" 구체적으로 물어본다. 애매하게 넘어가면 나중에 더 힘들다. 시간도 여유 있게 받는다. "오늘까지요? 혹시 내일 오전까지도 괜찮을까요?" 못 한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도 배웠다. "죄송한데 이 부분 처음 해봐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처음엔 부끄러웠다. 지금은 괜찮다. 모르는 게 당연하니까. 8개월 차의 결론 '간단한 건데'는 저주가 아니다. 단지 기준이 다를 뿐이다. 선배의 간단함과 나의 간단함은 다르다. 그걸 서로 이해해야 한다. 나도 2년 뒤엔 지금 일들이 간단해질 거다. 그땐 후배한테 조심해야겠다. '간단하다'고 쉽게 말하지 말아야겠다. 대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거 해봤어? 처음이면 좀 헷갈릴 수 있는데." 그게 진짜 선배가 하는 말 아닐까. 오늘도 '간단한 건데'라는 말을 들었다. 심장은 철렁했지만 물어봤다. "혹시 예시 코드 있으세요?" 선배가 보내줬다. 1시간 만에 끝났다. 물어보길 잘했다.간단한 게 어딨어. 다 어렵다. 그냥 익숙해지는 것뿐이지.